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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가라오케 대접하기 좋은자리
격렬한불씨70 2026-01-26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온전히 받은 기억이 별로 없는데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올해 여름은 길고 길었던 장마로 기억되려나보다.8/17 (수) 점심 with I 오복수산, 판교 평일 점심, 오랜 친구 I가 판교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2007년에 I가 어학당에 유학을 와서 한국어를 배울 때 처음 알게 되었으니 벌써 15년째다. I는 한국, 캐나다, 일본 등등 여러 곳을 거쳐 다시 한국에서 한일통번역을 공부하고 있는데, 나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책과 정치와 철학을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래 알고 지내서 서로의 옛 모습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가끔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게 좋았다.​판교에서 일하지만 판교역 근처는 잘 안오는 1인.알파돔시티 인근의 건물이 거의 다 완공되고, 회사들도 입주를 마쳤다.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자유로운 복장을 한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보고 I는 '여유로운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표정이 행복해보이네'라고 했다. 아니야, 그냥 오랜만에 햇빛 보고 밥먹으러 나와서 그럴 뿐이야, 회사에선 다 똑같아...!인공적인 건물을 별로 안좋아해서 이런 느낌 별로.. ​카이센동(해산물덮밥)을 먹고 싶다고 해서 테크원타워에 있는 오복수산에 갔다. 회사에서 공유자전거를 타고 가게에 가서 11시 40분에 웨이팅을 걸었는데 대기 시간이 75분으로 뜨길래 설마했는데, 12시에 자리에 앉았다. 아마 다들 대기가 길어서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나보다. ​연어와 연어알, 우니와 아보카도가 들어간 카이센동.연어알은 너무 알이 작았고 우니는 별 맛이 없었지만 연어는 촉촉한 편이었다. 덮밥보다 게살크림고로케가 백배쯤 맛있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이 정도 카이센동이 2만원대면 그럭저럭 괜찮은 판교가라오케 수준같다. 판교가 다 그렇지 뭐... 8/18(목) 코인노래방 with 아이들아직 결정된 건 아니지만 슬슬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미리 둘째 여권을 만들어두려고 사진관에 가서 여권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대략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길래 기다리는 동안 심심해서 뭘하지 하고 고민하다, 사진관과 같은 건물에 있던 코인노래방에 충동적으로 방문했다. ​애들이랑 노래방에 간 건 또 처음이었다. 얘들아, 엄마가 너네 출산하기 전날 영화 보고 혼자 코노에서 2시간 동안 노래했던 거 기억나니(?). 당분간 못올거라는 생각에 풍선 넣은 것 같은 배를 이끌고 코노에 갔더니 내 배를 보고 눈을 크게 뜨시던 카운터 직원 분의 표정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4곡에 2000원, 현금이 없어서 계좌이체를 해야 하나 했는데 요즘 코노는 삼성페이 결제도 되네! 좋은 세상.곰 세마리, 악어떼,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같은 노래를 애들 둘 나란히 앉아서 마이크 잡고 불렀다. 태어나서 처음 오는 노래방인데 마이크 꼭 붙잡고 열심히 노래하는 아이들ㅋㅋㅋㅋㅋ앞으로 가끔 엄마랑 아빠랑 같이 가자. 엄마도 어렸을 때 엄마아빠랑 노래방 갔을 때 즐거웠던 추억이 있거든. ​한참 애들이랑 신나게 놀다가 피아노 레슨 시간 바뀐거 깜빡하고 부랴부랴 달려가서 레슨 늦은 건 안자랑.... 매번 지각 한번 안했던 터라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선생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죄송해요. 카드결제가 된다!!!!8/19(금) 코인노래방 with Y비가 주룩주룩....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는데, 어제 애들이랑 다녀온 코노 사진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더니 일본언니 Y가 본인도 갈만한 코인노래방을 찾고 있었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내친김에 지금 판교가라오케 바로 같이 갈래요?해서 급벙개 성사.한 곡에 500원이라고 하니 그새 한국 물가가 또 이렇게 올랐냐며, 예전에 자취하던 숙대 인근은 세 곡에 500원이었는데 분당이 비싼건지 물가가 오른건지 하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2시간 열심히 놀고 만원이면 아직 저렴한 편 아닐까?​언니랑 노래방에 오는 게 처음이라 긴장도 했는데,걱정이 무색하게 둘이 노래 취향이 너무 비슷해서 한참 웃었다. 2시간 꽉채워서 일본노래만 불렀는데, 90년대 후반부터 대략 2010년 즈음까지 일본 오리콘 차트 30위권에 들어온 노래라면 거진 다 몸속에 새겨넣은 그 시절 DNA는 그 시절을 다시 되살려냈다.​서울도 아닌 경기도 변두리 코인노래방에서,잠시 일본에 살았던 아줌마 1인과한국에 오래 살고 있는 일본 언니 1인이Orange Range와 SPEED와 쿠라키 마이, 오오츠카 아이 같은 노래를 둘이 합창하며 꺅꺅대고 신나서 방방 뛰다니.......​정말 2시간을 쉴새없이 신나게 놀았다...!!!일본 노래 부르는데 자막으로 BTS랑 한국 아이돌이 나온다며 이건 일본에선 상상할 수 없는 콜라보라고 재밌어하는 Y언니.​노래란 참 신기해서, 사람은 10대부터 스무살 무렵에 들었던 노래를 평생 듣는다고 하더니 정말 나도 그렇다. 스무살 무렵 MP3에 가득 채워 듣고 또 들었던 노래를 평생 다시 듣고 부르겠지. ​1997년, 교보문고의 음반매장인 핫트랙스에서 4000원짜리 SES 데뷔 테이프를 산 게 내가 직접 돈을 주고 산 첫 음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거 아니지만, 노란 테이프 앞에서 4000원이라는 거금(그 때 초등학생에겐 큰 돈이었으니까)을 주고 음반을 살지 말지 고민하고는 계산대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돈을 냈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빠가 판교가라오케 일본 여행에서 사온 아이와 워크맨은 자동으로 A면에서 B면으로 넘어가는 오토 리버스 기능이 있었는데, 90년대 초등학생이 일제 카세트 플레이어로 테이프 음반을 듣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그 후 용돈 모아가며 많지는 않지만 몇몇 테이프들을 사들였고,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정성스럽게 곡목을 적어 친구에게 선물하곤 했다. 노래를 들으려면 라디오나 테이프, 조금 더 시간이 지나 CD를 샀던 시대. 음반매장 앞에는 인기 CD를 들어볼 수 있는 청음 코너가 있었는데, 돈은 없고 노래는 듣고 싶을 때 하염없이 그 앞에 앉아 노래를 듣곤 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데, 김대중 정부가 일본 음악 시장을 개방한다고 했을 때 음악인들은 한국 음악계가 무너진다며 시위를 하고 난리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대는 진화했고, 결국 시장은 개방되어 차게 앤 아스카가 일본 가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국내에서 공연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전까지는 불법 CD, 혹은 온라인에서 불법으로 mp3를 다운로드받아 CD에 구워서 매일 듣곤 했는데, 음반 매장에 홀로그램이 붙은 Mr.Children 음반이 있는 걸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돈이 별로 없어서 CD를 사진 못했지만, 당시만 해도 노래 서너곡 들은 싱글이 800엔, 여러 곡 들은 앨범은 3천엔이라는 고가에 팔리던 일본 가수들의 CD가 만원 남짓한 가격에 팔리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CD가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256기가 아이리버 목걸이 mp3.....아이팟은 대학 때 샀다.​아무튼 수많은 불법 mp3 사이트들은, 매일 발표되는 일본의 수많은 오리콘 차트 신곡을 퍼날랐고, 매일같이 판교가라오케 차트를 보면서 온갖 노래를 들었다.듣다 지겨우면 90년대 차트까지 찾아 들으면서 그 시절 노래들을 흡수하듯 몸에 기억했던 시절이 있었다.​가사도 제대로 몰라서 사전 하나하나 찾아가며 뜻을 해석해야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잘 모르는 노래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우월감이자 즐거움으로 가득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때 그렇게 기억한 노래들은, 놀랍게도 아주 오랜만에 들어도 음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은 그렇지 않을까. 스무살 무렵에 들었던 음악, 스무살 무렵에 만난 사람들, 그 때 했던 것들이 모여 지금의 삶을 이루고 있는 모습들. 스무살 무렵엔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그 시절 여고생들 다 아줌마됐네 ㅋㅋㅋㅋㅋㅋㅋ(고등학생 시절 시험 끝나면 거의 항상 같은 멤버와 노래방을 갔다. 생각해보니 그 때 같이 갔던 애들 다 일본 락밴드 좋아했네... Do As Infinity나 러브사이키델리코 같은..)​사진 찾느라 보니 일본 가서도 노래방 열심히 다녔다.일본 친구 뿐만 아니라 같은 학교에 유학했던 유럽, 홍콩, 대만 친구들과도 자주 노래방에 갔다. ​당시 시간제였던 한국 노래방과는 달리 일본 노래방은 인원 수로 계산했는데, 시간대별로 금액이 꽤 세분화되어 있었고 규모가 훨씬 컸다. 신주쿠에 있는 가라오케관 같은 유명 노래방은 건물 하나를 통째로 노래방으로 썼으니, 당시 수노래방 같은 대형 체인 노래방이 이제 막 등장하던 한국에 비하면 일본의 노래방 산업은 어마어마했다. ​시간이 지나면 서비스를 넣어주는 한국과 달리,시간이 다 되면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었지만,그래도 야간 학생요금이 있어서 술먹고 놀다가 전철 끊기면 동아리 애들 다같이 노래방 가서 아침 전철 판교가라오케 올 때까지 밤새 노래도 하다가 잠도 자다가 그렇게 집에 갔던 날들도 있었다. 밤새 음료수 무제한으로 시키고 놀아도 1인당 1-2만원이면 놀 수 있었던 평일의 야간요금. ​지금도 그런거 있나 모르겠네. 온갖 국가의 노래가 울려퍼졌던 도쿄의 가라오케​그러고보니 한국 친구들이랑도 자주 갔네. 유학하던 애들 다들 노래방을 좋아했던 건 아닌 거 같은데 생각해보니 내가 끌고 갔던 것 같다. 술 한방울 안마셔도 그냥 놀러 자주 갔었... 얘들아 미안해.. ​오히려 회사 들어온 후에는 술마시는 분위기가 싫어서 노래방에 별로 가지 않았고 (회식하고 나서 몇번 간 적이 있지만 사람들 눈치와 분위기 봐야 하고, 술잔 도는 분위기도 싫어서 재미있게 논 기억이 별로 없다. 참고로 우리 남편은 지독한 음치지만 그래도 노래방 가자고 하면 열심히 간다 ㅋㅋㅋㅋ )​한국 친구들이랑 간 적도 있지만 대부분 분위기 띄우는 용으로 다들 알만한 한국 노래만 불렀던 터라, 정말 오랜만에 예전에 좋아하던 일본 노래를 부르니 추억이 방울방울 밀려드는 느낌이었다. ​이 노래는 누가 알려준 노래고,이 노래는 누가 꼬시면서(..?) 불렀던 노래고,이 노래는 누구랑 같이 공연 보러 갔던 노래고,이 노래는 셰어하우스에서 다같이 파티하며 부른 노래고.... 이 노래는 누구 결혼식에서 축가로 부른 노래고.....​Y언니랑 노래마다 담긴 추억들을 서로 얘기하다보니,음악이란, 노래란, 정말 뼛속에 스며드는 기억이구나 싶어서 즐거웠던 날. ​앞으로 정기적으로 언니와 코노 모임을 하자는 약속까지 하고 헤어졌다. 술 한 방울 없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니.​​평생 죽을 때까지 그 시절 노래 부르겠지만,그럼 뭐 어때. 같은 시대를 공유한 사람들끼리 즐거우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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